문화 / Culture

서점과?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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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화로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우리는 J가 운영하는 카페에 앉아 서점에 들일 큰 화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J는 구석에 서 있던 벤자민 나무를 가리켰다. 굳이 살 거 있나. 저 나무를 데려가서 키우면 어때? J의 제안을 거절할 수 없었다. 큰 화분은 비싸니까. 그렇게 해서 나는 달그락달그락 수레를 끌고 j의 카페로 갔다. 한밤중에. 어쩐지 그런 일은 낮에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나는 나보다 키가 크고, 어쩌면 무게도 더 나갈 그 벤자민 나무를 수레에 싣고 다시 덜그덕덜그덕, 온 길을 되짚어 걸었다. 카페는 서점과 그리 멀리 않으나 몇 번인가 쏟을 뻔하다 보니 거리는 한없이 늘어났다. 유서 깊은 동네의 깊은 밤. 낡은 도로의 군데군데 패인 자국. 몇번이고 멈춰서서 나는 영영 도착할 수 없는 건 아닐까,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아슬아슬 다행히 그리고 무사히 나는 서점에 도착했고 그리하여 동양서림 입구에는 커다란 벤자민 나무가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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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라고 있다”고 적으니 섭섭하다. ‘자라고 있었다’가 로 기억되지 않기 위해 들인 노력과 정성이 그 표현 속에는 담겨 있지 않은 것 같다. 아닌 게 아니라 지난 10개월 동안 저 나무는 몇 번인가 고사될 위기를 넘겼다. 나는 식물에 대해서는 거의 무지렁이다. 처음에 벤자민의 잎이 풍성해지고 키도 자라기에 잘 자리 잡은 줄로만 알았다. 1층에 볕도 잘 드는구나, 순한가 봐 알아서 잘 자라네. 하나둘 잎이 떨어질 때는 자연의 순리쯤으로 생각했다. 새 잎이 자라면 헌 잎은 떠나기 마련인 거지. 그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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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의 심각함을 알게 된 것은 어느 늦은 밤이었다. 마침 혼자 근무하는 월요일 밤이어서 나는 1층 카운터에 앉아 타박타박 무언가 적고 있었다. 소설책을 사 간 손님이 다시 문을 열고 내게로 왔다. 책에 무슨 문제라도 있나 싶었는데, 화분이 마음에 걸려 돌아왔다는 거였다. 공연한 참견을 하는 것 같아 망설였는데 아무래도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저 아이 저대로 두면 얼마 못 가 죽을 거예요. 약을 쳐주시거나, 아무튼 어떻게 해야 할 것 같아요. 저도 똑같은 나무를 키우다가 보냈거든요. 과연 그랬다. 뒤집어보는 잎사귀마다 생겨난 하얀 점들이 징그러웠고 생생해 보이기만 하던 새 잎들도 가까이서 보니 풀죽어 있었다. 당장 어쩌지도 못할 시간이니, 찜찜하고 불안한 것도 당연했으나, 그 감정이 유독 진했던 것은 참 이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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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살고 있는 시인 M 선생님이 화분과 함께 보내온 카드에는 유 시인과 가까이 두어줬으면 좋겠다고 적혀 있었다. 내가 시를 쓰는 시간과 그렇게라도 함께하고 싶다고도 적혀 있었다. 그 화분에는 남천이 심겨 있었다. 듣기로 좀체 약해지지 않는 식물이라고 했었다. 그런 남천도 죽었다. 어디 그뿐인가, H가 선물한 고무나무, Y 가게에서 보낸 선인장도 몇 계절 못 있고 곁을 떠났다. 나는 화분을 비울 때마다 가볍지 않은 죄책감을 느꼈지만, 내가 선택한 일이 아니라는 변명 같은 체념이 섞여 있었고 그 감정은 깊은 것도 아니었고 길지도 않았다. 내놓은 빈 화분은 금방 사라졌고 나도 그것으로 그만 그들을 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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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나는 당장 벤자민 화분을 바깥에 내놓았다. 환기가 중요하다는 이야기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가지를 치고 약을 구해 뿌렸다. 독한 약이라는 설명을 듣고 그 많은 잎들을 하나하나 닦아내었다. 식물을 잘 키운다는 친구들에게 문의를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들의 조언은 조금씩 달랐고, 어떤 것들은 상충되기도 했다. 나무는 좀처럼 낫지 않았다. 서점 문을 열고 들어서거나 나설 때마다 야위어가는 나무를 걱정하면서 나는, 나의 걱정에 대해 생각했다. 어쩌면 오 헨리 「마지막 잎새」의 수우처럼 시들어가는 벤자민에서 나의 서점을 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잘 자라고 있던 자리에서 공연히 이리로 데려온 것은 아니려나. 신촌에서 혜화로 서점을 옮겨야 했을 때 나의 심정도 그러하지 않았나.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 이 공간에서 나의 서점도 저렇게 앓아가는 것은 아닐까. 떨어져서 보기에는 잘 지내고 있는 것처럼 여겨지지만, 몇 발짝 더 가까워지면 시름시름한 것 역시 닮았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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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이 문제일지도 모른다는 조언을 들은 날, 나는 마침 찾아온 친구들을 데리고 화분을 들어 가까운 꽃집까지 갔다. 꽃집 사장님은 난감한 표정으로 흙을 갈아보자 했다. 화분의 흙 속에는 스티로폼이 가득 들어 있었다. 아연해하는 나를 보며 사장님은 조금이라도 가볍게 하기 위해 또 배수를 위해 이렇게들 한다고 위로해주었다. 뿌리를 잘라내고 질 좋은 흙으로 화분을 채우는 동안 나는 내 작은 시집서점의 흙이 되는 것이란 무엇일까 생각했고, 부디 이 나무도 나의 서점도 건강해졌으면 하고 바라마지 않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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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곧 혜화동 시절의 1년. 벤자민 나무, 그리고 나의 시집서점은 그럭저럭 잘 자라고 있다. 나무의 건강은 어린 아들의 문제집을 사러 들르곤 하는 꽃집 사장님이 보증해주고 있다. 문을 나서기 전에 잊지 않고, 잘 자라고 있는 벤자민 나무에 대한 감탄과 칭찬을 건네기 때문이다. ‘감사합니다’하고 웃지만 그렇게 듣지 않아도 나 역시 잘 알고 있다. 저 나무가 얼마나 잘 지내고 있는지에 대해서. “둥근 초록, 단단한 초록, 퍼져 있는 초록 사이, 얼굴 작은 초록, 초록이 아닌 것 같은 초록 머리 헹구는 초록과 껴안는 초록이 두루 엉켜 있는”* 저 나무와 잎들을 매번 들여다보고 있으니까. 방심하면 안 되겠지만, 잘라낸 뿌리들이 화분 곳곳에 잘 깃들어가고 있을 것이다. 내 작은 서점의 건강은, 드문드문 그래도 잊지 않고 찾아오는 나의 독자들이 보증해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덕분에 나의 서점도, 서점의 서가에 빼곡한 시집들도 시 읽기를 놓지 않는 독자들에게 잘 전달되고 있다고 믿는다. 이따금 떠올린다. 무거운 나무 화분을 실은 채 덜그덕덜그덕 수레를 끌고 오던 그 밤. 밀고 당기는 것을 잠시 쉬면서 집집 창문마다 떠올리고 있는 낮은 불빛들이 참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곳, 혜화동을 좋아하게 될지도 모른다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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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두 개의 초록마종기 저 | 문학과지성사
함께 붙잡고 울 수 있어야 진정한 행복이고 사람과 사람이 고루 섞여 서로의 마음속까지 당당히 걸어 들어갈 수 있는 것이 바로 희망이라는 시인의 평범하지만 귀한 믿음의 힘, 오늘의 우리에게도 변함없는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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