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Culture

일확천금을 꿈꾸며 성실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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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나의 직업적 모토다. 직업인으로서의 심오한 철학을 담은 좌우명은 아니고,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직업 탐방 강연을 준비하다가 깨달은 이 직업의 경제학적 토대다. 작가의 수입은 원고료와 인세로 나뉜다. 강연료나 다른 직업을 통해 들어오는 수입이 더 큰 경우도 많지만, 이론상 작가의 수입은 저 두 가지다. “태초에” 작가는 이렇게 돈을 벌었다고 가정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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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료는 원고를 쓰는 일에 대한 보상이다. 예를 들어, 단편소설을 잡지에 실을 경우 작가는 원고 분량에 비례하는 보수를 받는다. 이때 원고의 양을 재는 단위가 200자 원고지라는 것인데, 이것은 가득 채우면 띄어쓰기를 포함해 200칸이 되는, 빨간색 칸이 그려져 있는 예쁜 종이다. 요즘은 쓰는 사람이 거의 없고 해가 갈수록 “원고지가 도대체 무슨 뜻인가요?” 하고 질문하는 사람이 더 많아지겠지만, 이런 관습은 한동안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축구장 세 배 면적”과 같은 것인데, 누가 이런 표현을 썼다고 그 지역에 축구장 세 개가 들어선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니 공모전에 투고할 원고를 실제로 원고지에 프린트해서 보내지는 말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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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작가가 책을 낼 때는 인세라는 이름의 수익이 발생한다. 이것은 노동에 비례하는 보상이 아니다. 글을 길게 쓴다고 인세를 더 받는 것이 아니고, 책값이 비싸거나 책이 많이 팔려야 더 많은 인세를 받는다. 인세가 영어로 ‘로열티’라는 점을 떠올려보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원래는 책마다 붙어 있던 ‘인지’라는 이름의 작은 우표같이 생긴 딱지에, 인지세라고 불리는 요금을 내는 개념이지만 이 또한 이미 고대의 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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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말로 인세는 저작권료다. 책에 대한 저작권 사용료가 기본이지만, 영화나 드라마 같은 다른 매체에 대한 저작권도 포함된다. 이것을 2차 저작권이라고 하는데, 이 부분에 대한 수익은 생길 수도 있고 영영 안 생길 수도 있다. 요즘 기준으로 작가가 성공하느냐 마느냐는 이 부분이 관건이라는 점은 모두가 짐작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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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태초에” 작가의 수입은 이 두 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써낸 분량만큼 노동의 가치를 보상받거나, 시장에서 평가되는 작품의 가치에 따라 책정되는 사용료를 받거나. 이 두 가지 수익 모델을 가지고 생계를 꾸려나가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이르는 결론이 바로 이 글의 제목이다. 일확천금을 꿈꾸며 성실하게!

작가에게 출판은 일확천금을 꿈꾸게 하는 사업이다. 도박 같은 삶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이 직업을 통해 경제활동을 하는 한 “대박”을 꿈꾸지 않을 수 없다. 욕망을 부추긴다는 의미가 아니라 수익 구조 자체가 그러하다. 예를 들어, 일반적이고 소박한 출판계약서에는 책이 아주 적게 팔리는 상황부터 아주 많이 팔리는 상황까지 커버할 수 있는 조항들이 들어가 있다. 또한 책을 내는 일은 지적재산을 만들어서 묻어두는 일이기도 하다. 출판사는 그 지적재산을 잔뜩 수집해서 땅에 심어두는데, 시간이 흐르면 그중 몇 개가 자라나 풍성한 열매를 맺는다. 이 업계에서 성공은 허영이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기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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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확천금”을 굳이 모토에서 언급하는 것은 이 점을 껄끄러워하지 않고 인정하려는 의도다. 성공의 그림자는 기나긴 좌절이므로, 이렇게 객관화해두는 것만으로도 정신 건강에 큰 도움이 된다. “성실하게”는 노동에 대한 보상, 즉 원고료 부분에 대한 이야기다. 일확천금처럼 불확실한 수익에 기대는 것은 생계를 꾸리는 데에도 도움이 되지 않으므로 가능하면 작가는 성실한 편이 낫다. 노동에 비례하는 수익이 어느 정도는 있어야 건전한 가계를 꾸릴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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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가 된다는 것은 이런 자세를 갖게 되는 것이다. 내 모토를 받아들여야 프로라는 뜻이 아니고, 저마다 각자의 모토를 품어야 프로라는 의미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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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모토의 “성실하게” 부분은 고객에 대한 서비스를 다짐하는 말이 아니다. 성실에 관한 한 나는 걱정을 해야 하는 작가는 아니다. 일반적으로 편집자와 작가의 관계는 편집자가 작가에게 원고를 내놓으라고 닦달하는 장면으로 묘사되곤 하지만, 내 경우는 다르다. 원고를 얼른 줘놓고 이따금 편집자에게 연락해서 왜 책이 안 나오는지 문의하는 경우도 종종 있으니까. 나에게 중요한 부분은 오히려 이 직업의 지향점이 일확천금이라는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과감하게 상업성을 발휘하는 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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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글을 써서 돈을 벌겠다는 멍청이는 제아무리 상업적이어도 거기서 거기다. 또한 다른 요소를 고려하지 않은 이 직업의 원초적인 수익 구조에 따르면, 원고료와 저작권료를 추구하는 행위는 대단히 순수한 경제활동이기도 하다. 그래도 상업성을 발휘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늘 복창하고 마음에 새겨두지 않으면 점잔 빼다 기회를 놓치기 일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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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프로가 된다는 것은, 제도로 규율되지 않는 삶을 꾸려야 하는 프리랜서가 프로로 활동한다는 것은, 어떤 태도나 규칙을 내면화한 다음 외부 환경에 굴하지 않고 그 태도를 안정적으로 분출해내는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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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가 일반론이다. 프로는 좋은 것이고 아마추어는 어딘가 부족하다는 이야기. 그런데 세상에는 프로가 부러워하는 아마추어라는 것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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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를 할 때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두 사람이 있다. ‘조미니’와 ‘클라우제비츠’라는 옛날 유럽 사람들로, 두 사람은 유럽의 근대 군사전략을 체계화한 인물이다. 요즘이야 ?『전쟁론』? 을 남긴 클라우제비츠가 압도적으로 유명하지만, 같은 시대를 살았던 조미니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전략 이론가다. 내 석사 논문의 이론적 기초가 된 두 사람이기에 이 점에 대해서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사실 당대에는 조미니가 훨씬 중요한 인물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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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투안-앙리 조미니는 스위스의 은행가 집안에서 자랐다. 나폴레옹이 위대한 재능을 발휘하기 시작하자 혁명에 가담해 나폴레옹의 군대에 들어간 그는, 곧 나폴레옹의 전략에 지대한 공헌을 하게 된다. 그렇게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사실 이 기록은 의심의 여지가 많다고 한다. 동시대 사람들이 다 죽은 뒤, 제일 늦게까지 살아남은 조미니가 스스로 남긴 기록인 탓이다. 사실 조미니는 나폴레옹으로부터 크게 인정받지는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급기야 전쟁 말기에는 러시아군에 가담해서 나폴레옹 군대를 몰아내는 데 일조하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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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 폰 클라우제비츠 또한 같은 시대 사람이다. 샤른호르스트라는 프로이센 군사 개혁가의 눈에 띄어 일찍이 성공 가도를 달리던 와중에 나폴레옹에게 나라가 망하면서, 클라우제비츠도 결국에는 러시아군 군복을 입고 참전해 나폴레옹을 쓰러뜨리는 쪽에 서게 된다. 그러나 그러한 이유로 왕의 미움을 사게 되고, 사관학교 교장으로 좌천되어 10년여를 보낸다. 이게 좌천이라니 이상한 일이지만, 아무튼 거기에서 쓴 원고가 『전쟁론』이다. 사실 이 원고는 완결조차 되지 못한 것이었다. 전쟁에 참전한 클라우제비츠가 전염병으로 급사해버린 탓이다. 아내가 그의 원고를 모아 책으로 출간한 것이 바로 ?『전쟁론』? 인데, 이 책은 세상에서 제일 유명한 전쟁 이론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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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이 다룬 주제는 근본적으로 똑같다. 희대의 천재 나폴레옹이 도대체 무슨 마법을 부렸는지 해설하는 일이다. 먼저 조미니는 프랑스식 계몽주의의 토양 위에 서 있는 사람이다. 부대가 어떤 방식으로 움직이는 것이 효율적인지를 기하학을 통해 규명하는데, ‘작전선’이라는 개념이 유명하다. 나폴레옹을 기동의 관점에서 이해한 것이다. 그의 주요 저서인 ?『전쟁술』? 을 상세히 소개하기에는 적절하지 않으니,? 『은하영웅전설』? 에 등장하는 각개격파 개념이 조미니의 ‘내선 작전선’으로 설명된다는 정도만 언급해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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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클라우제비츠는 독일식 낭만주의가 묻어나는 인물이다. 전쟁 중에 별안간 사랑에 빠지라는 이야기는 아니고, 기하학이니 기동이니 하는 싸움 이전의 상황보다 현장 자체의 상황이나 심리가 더 중요하다는 관점이다. 싸움꾼 나폴레옹에 대한 독일식 해석인 셈이다. (“전쟁은 다른 수단으로 행하는 정치의 연장”이라는 말은 초반 어느 챕터의 소결론일 뿐이니 너무 집착하지는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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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제만 나오면 신나서 길게 쓰게 되는데, 아무튼 본론으로 돌아가서, 프로가 부러워하는 아마추어란 클라우제비츠 같은 사람이다. 여기서 아마추어란 실력이 모자란다는 의미가 아니다. 프로의 치열함을 겪었는지의 차이다. 직업 저술가의 자세 같은 것은 고민해본 적도 없고 단 한 권의 책을 유작으로 남겼을 뿐이지만(대신 두껍다) 그 책으로 인해 영원히 최고로 기억되는 사람. 정말 짜증 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반면 조미니는 평생 전략에 관한 글을 써댄 사람이다. 말하자면 프로 저술가다. 전략가로서의 평판이 보장되어 있지 않고, 저술을 통해 스스로를 끊임없이 증명해내야 했던 사람. 동시대에 더 유명한 쪽이 조미니였다는 말은 조미니가 그 업계를 지탱하고 있었다는 뜻으로 읽히기도 한다. 엄청 장수하기는 했지만, 아무튼 그는 생전에 성공을 거두었다. 그리고 그만큼 치열하게 썼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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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중 승자는 누구일까. 저작물로 따지면 단연 클라우제비츠다. 더 따질 것도 없는 진리다. 대신 조미니는 오래 살아남아서 회고록을 남겼다. 나폴레옹보다도, 나폴레옹 휘하의 장군들보다도, 무엇보다 클라우제비츠보다 더 오래. 역사의 진정한 승자는 남들보다 오래 살아남아서 회고록을 쓴 사람인 법이지만, 바로 그 사실 때문에 조미니의 기록은 지금도 의심받는다. 기억을 조작하고 자신의 업적을 미화했으리라는 합리적 의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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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사실 이것은 합리성의 문제가 아니라 감정의 문제다. 고고하게 살다 간 아마추어는 별로 생각해보지 않았을 법한, 치열하고 치졸한 프로의 내면. 의심받는 쪽은 늘 조미니고, 그래서 나는 클라우제비츠보다는 조미니에게 감정이 이입되곤 한다. 스타가 된 죽은 라이벌의 책을 읽으면서 조미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하는 생각에서다. 물론 애초에 이 스토리의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 다만 이입할 수 있는 익숙한 감정이 포함되어 있기에 자꾸만 떠오르는 스토리가 되었을 뿐이다. 치열한 프로와 고고한 아마추어, 그리고 거기에 얽혀 있었을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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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술업이란 늘 성공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존재하는 게임이고, 대부분의 참여자는 결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아직 성공하지 못한 자신의 삶을 받아들여야 한다. 어떤 모토가 되었든 태도를 분명히 하지 못한 창작자는 시간의 시험을 견뎌내는 동안 내면이 먼저 망가져버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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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성공은 누구에게나 따끔하다. 늘 상상했던 성공한 사람의 자리가 내 자리가 아니라는 깨달음은 누구에게나 아플 수 있다. 그런데 그게 전부도 아니다. 존경받는 저술가에게는 고고한 아마추어라는 높은 산이 있다. 아마 산이 그것 하나만은 아닐 것이다. 갑자기 소설을 써낸 연예인의 책이 내 책보다 훨씬 잘 팔리는 일이나, 모두의 관심을 받으며 나타난 신인이 내가 가졌던 찬사를 모조리 긁어가는 일처럼. 일확천금을 꿈꾸는 일의 이면에는 이렇게 많은 그림자가 드리워 있다. 그 감정들은 대체로 검다. 내 머리 위에서 스포트라이트가 탁 켜져야만 비로소 지워지는 감정들이어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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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치졸한 감정들 사이에서도 평소에 갈고닦은 신념을 안정적으로 분출해내는 태도, 그것이 프로의 모토다. 내용은 좀 웃겨도 상관없다. 당신이 그 좌우명대로 해낼 수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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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가 된 죽은 라이벌의 책을 읽는 시간을 조미니는 그럭저럭 잘 견뎠을 것이다. 어쨌거나 그는 프로 저술가였을 테니까. 물론 정답은 모른다. 그냥 상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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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하게 사는 일은 가계와 심리 상태를 안정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남들이 뭐라고 하든, 연습을 꾸준히 하고 글이 계속 잘 써지면 근육처럼 올라오는 자존감을 보게 될 수도 있다. 그래도 남의 성공은 힘들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누군가가 잘되면 나도 역시 잘될 것이다. 직관과는 너무 다르지만, 우리는 결국 대체재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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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친한 동료가 성공하는 모습을 보면, 되도록 짧게 절망한 다음 묻어갈 방법을 재빨리 모색하자. 옹색하게 들리겠지만, 먼 길을 함께 가는 사이란 그런 것이다. 그가 낸 길을 수월하게 따라간 다음, 내가 앞서는 날이 오면 그를 위해 내가 길을 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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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미니와 클라우제비츠를 함께 공부해보면 알 수 있다. 조미니는 클라우제비츠를 이해하기 위한 기준점이 되어 있고, 클라우제비츠는 조미니를 읽는 눈금이 되어 있다는 사실을. 물론 나폴레옹은 그 위에서 비웃고 있겠지만, 그래도 조금은 감동적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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