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노조 와해 혐의’ 이상훈 무죄…다른 피고인들은 유죄

2020.08.10 21:00 입력 2020.08.10 22:41 수정 유설희 기자

항소심 “증거 위법 수집”…1심 뒤집혀 이상훈 ‘석방’

“검찰이 다스 사건 관련 압수수색하며 영장 확대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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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서비스 노조를 와해한 혐의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던 ‘삼성 2인자’ 이상훈 전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사진)이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석방됐다. 그가 노조 와해 공작과 관련해 보고받은 문건이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로 판단됐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죄가 없어서 무죄 선고하는 것이 아니라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여서 그럴 수밖에 없었음을 강조했다.

이 전 의장을 제외한 강경훈 삼성전자 부사장, 박상범 전 삼성전자서비스 대표 등의 노조 와해 혐의는 그대로 유죄가 인정됐다. 금속노조 측은 “자본의 노조파괴 범죄를 수사하고 처벌할 길을 봉쇄하는 논리”라고 반발했다.

서울고법 형사3부(재판장 배준현)는 10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이 전 의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던 강 부사장, 박 전 대표는 항소심에서 징역 1년4개월로 감형받았다.

이 전 의장이 무죄를 받은 이유는 1심 유죄 판결의 결정적 증거가 됐던 ‘CFO 보고 문건’이 위법 수집 증거로 인정돼 증거능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이 전 의장은 당시 삼성전자 경영지원실장(CFO)으로 노조 와해 전략을 지시하고 보고받은 혐의를 받았다.

이 전 의장 등은 노조 와해 전략을 담은 문건을 확보한 압수수색 영장이 원래 목적과 다르게 집행돼 검찰의 절차가 위법하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2018년 2월8일 수원시 삼성전자 본사 건물에서 삼성전자가 이명박 전 대통령의 다스 미국 소송 비용을 대납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압수수색을 했다. 인사팀 사무실을 살펴보던 한 검찰 수사관은 직원 PC에서 인사팀 직원 심모씨가 PC, USB 등을 인사팀 회의실과 본인 차량 트렁크에 숨겼다는 사내 메신저 대화를 보고 그를 체포한 뒤 USB를 압수했다. 이 USB에 삼성의 비노조 경영 방침이 담긴 ‘그룹 노사 전략’이 저장돼 있었다.

1심은 검찰 압수수색 절차에 위법이 없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인사팀 사무실은 영장에 기재된 압수수색 장소가 아니어서 위법하다고 봤다. 노조 와해 전략 문건이 증거능력을 잃으면서 노조원을 표적감사한 행위, 노조원에게 노조 탈퇴를 종용한 행위 등이 무죄로 뒤집혔다.

다만 2심은 이 전 의장에게 무죄를 선고하며 “법리적으로는 무죄지만 보고 문건의 증거능력이 인정된다면 원심 판단 상당 부분을 유지했을 것”이라며 “피고인에게 공모 가담 혐의가 없었다고 무죄 선고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1심에서 유죄로 인정됐던 불법파견 혐의도 무죄로 뒤집혔다. 1심은 삼성전자서비스가 협력업체 수리 기사에게 직간접적으로 상당한 지휘·명령을 했다고 봤다. 하지만 2심은 판단을 뒤집었다. 삼성전자서비스가 만든 전산시스템이 기사에게 업무를 자동으로 배정했다는 게 주된 이유다.

조현주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는 “삼성은 일찍부터 사람이 사람에게 명령하는 것을 전산시스템으로 구조화했다”며 “기술 발전에 따른 지휘·명령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노조도 성명서에서 “무섭게 번져가는 플랫폼노동을 보호할 길도 사라진다”고 비판했다.

이 전 의장 등은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삼성전자 경영지원실 등에서 노사 업무를 수행하며 2013년 삼성전자서비스에 노조가 설립되자 미래전략실이 마련한 ‘그룹 노사 전략’을 바탕으로 노조가 있는 협력사를 폐업시키는 등 노조 와해 공작을 벌인 혐의를 받는다.

1심 판결 이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 5월 서울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사과하며 ‘무노조 경영’을 종식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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